외부적 인간
나의 가버린 헌 창문에게 잘 있니? 환각의 리사이클장에서 폐기되던 전생과 이생의 우리 그리고 미래의 오염된 희망으로 살아가다가 결국 낙엽이 된 우리 우리는 함께 철새들을 보냈네 죽음 어린 날개로 대륙을 횡단하던 여행자 먼 곳으로 떠나가는 모든 것들에게 입맞춤을 하면 우리의 낡은 몸에는 총살당한 입김만이 어렸네 잘 있니? 우리는 낙과들이 곪아가던 가을 풀밭에서 뭉그러지는 육체 속으로 기어들어가 술 취하던 바람을 들었네 먼 시간 속에 시커멓게 앉아 있는 아버지 살해당한 아버지에게 살해당한 이들을 고요하게 매장했던 바다의 안개 소리도 들었네 총소리였니? 아니, 돌고래가 새벽의 태양을 바라보며 출산과 죽음을 준비하던 순간이었니? 잘 있으면 좋겠다, 그 사람들 춥겠다 덥겠다 아프겠다 배고프겠다 그들은 없는 이들 ..
이렇게 앉은 자세 있잖아. 이렇게 탁자 앞에 앉아 숨겨 두었던 팔을 꺼내 머리를 묻으니까 땅속에 숨은 기분이 된다. 땅속에는 깊은 줄거리가 있다고 하지. 실을 따라가듯 줄거리를 짚어가면 나는 제3의 인물이 된다고 하지. 줄거리의 끝에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없게 된다고 해. 그러니 내 옆의 의자에 앉아 너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으면 좋겠다. 밤을 새워주었으면 좋겠다. 눈을 가리고 만든 물건들 속에는 내 손이 섞여 있을 거야. 눈을 가리고 그린 그림 속에서 나는 너를 더듬고 있을 거야. 신해욱, 『syzygy』, 문학과지성사, 2014, p. 126-127
우리의 방은 너무 작고 시끄럽고 우리에게 돈은 항상 멀리있지
새벽에 듣는 캣파워를 어떻게 안 사랑하냐고 그런 방법 같은 거 모른다
가끔 체지가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두고 간 것에 대해 생각한다. Heavy도 그렇고 Talking to myself도 그렇고. 린킨파크의 노래 속엔 언제나 체지의 우울함이 스며 있었지만 이 앨범에서는 이상하게도 어떤 경지에 올랐단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치유되는 것이 두렵다는 당신의 말을 이해했다'라고 고백하던 소설 참담한 빛 속 아델의 문장을 떠올린다. 그래도 체지의 목소리를 계속 들을 수 있는 건 행운이다. 누가 저 수많은 불빛 중에 하나가 더 꺼진다 해서 신경이나 쓰겠어, 저렇게 빛이 많은데. 누가 누군가의 시간이 사라져간다는 걸 신경이나 쓰겠어, 우리 모두 그런데. 거기서 자신은 신경을 쓴다는 이 고백. "If they say Who cares if one more light goes ou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