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적 인간
신해욱, 이렇게 앉은 자세 본문
이렇게 앉은 자세
있잖아. 이렇게 탁자 앞에 앉아
숨겨 두었던 팔을 꺼내 머리를 묻으니까
땅속에 숨은 기분이 된다.
땅속에는 깊은 줄거리가 있다고 하지.
실을 따라가듯 줄거리를 짚어가면
나는 제3의 인물이 된다고 하지.
줄거리의 끝에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없게 된다고 해.
그러니 내 옆의 의자에 앉아
너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으면 좋겠다.
밤을 새워주었으면 좋겠다.
눈을 가리고 만든 물건들 속에는
내 손이 섞여 있을 거야.
눈을 가리고 그린 그림 속에서
나는 너를 더듬고 있을 거야.
신해욱, 『syzygy』, 문학과지성사, 2014, p. 126-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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