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적 인간
정말 정말 많이 들은 노래 중에 하나. 보수동쿨러 얘길 하면서 언급해놓고 올리지 않았다는 걸 (이제야) 깨닫고 올린다. 난 역시 한 1년 이상은 좋아해야 좋아하는 걸로 치는 모양.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걸 물어보는 데에 대답하는 게 어렵지. 남들은 잘만 얘기하던데…아니 사실 좋아하는 걸 어디다 모아놓는 게 귀찮은 사람 아닐까 좋아하는 게 너무 많은 나머지 좋아하는 것들을 정리하기가 어려운…마치 더 꽂을 데가 없어 책상에 탑처럼 쌓인 내 책들처럼 웅앵 아무튼, 그런 고로 내가 끼적끼적 여기다 모아놓는 노래들은 매우 무척이나 좋아하는 곡이다. 이렇게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가지고 뭐할 거냐면 나중에 북카페 차릴 건데 거기다가 웅앵웅 나는 베이스 사운드를 좋아하는 편인데,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막귀로서..
쓸모없는 이야기 종이 펜 질문들 쓸모없는 거룩함 쓸모없는 부끄러움 푸른 앵두 바람이 부는데 그림액자 속의 큰 배 흰 돛 너에 대한 감정 빈집 유리창을 데우는 햇빛 자비로운 기계 아무도 오지 않는 무덤가에 미칠 듯 향기로운 장미덩굴 가시들 아무도 펼치지 않는 양피지 책 여공들의 파업 기사 밤과 낮 서로 다른 두 밤 네가 깊이 잠든 사이의 입맞춤 푸른 앵두 자본론 죽은 향나무숲에 내리는 비 너의 두 귀 진은영, 『훔쳐가는 노래』, 창비시선, 2012, p. 22-23
뒤 너는 나에게 무슨 말을 했는데, 그게 무슨 뜻이지? 밤길을 걷다가 무슨 말을 들었는데, 그게 무슨 말이지? 캄캄해지다가, 캄캄해지다가, 캄캄한 곳을 향해 돌아설 수도 없을 때, 너는 괴물 같은 얼굴로, 십자가와 비슷한 자세로, 천둥 번개가 치는 밤하늘 아래, 자꾸 거대해졌다. 등뒤의 세계는 어디에나 있구나. 매일 잠에서 깨어나기를 반복했는데도 다시 밤. 흩날리는 빗방울들을 기준으로 나는 중얼거리네. 궁금한 목소리로. 의심하는 목소리로. 돌이 되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인가. 모든 사람인가. 뒤라는 곳은 무한해. 내내 타오르고 있구나. 나는 자꾸 무너지면서 또 발생하는 세계를 바라보았다. 빗줄기는 팔이 세 개였다가 다리가 열 개였다가 무수한 팔과 다리를 모아 못 박힌 채로 무한이 되는..
커튼콜 공연이 끝나자 나는 태어났다 끝도 없이 계속되던 공연이 끝나자 나는 태어났다. 처음이자, 슬픔이 없는 마지막 눈물 속으로 익살스러운 바람이 불었고, 나무들은 탬버린 수만개를 마구 흔들어댔다. 공연 중 검고 하얗고 뜨거운 꽃을 훔치다 데어 지문으로 남았다. 당신이 질투로 휘두른 칼날을 맨손으로 받은 흉터가 손금으로 남아, 지금껏 내 두 손을 꽁꽁 묶고 있다. 공연의 마지막, 밑도 끝도 의미도 없는 상징처럼 나를 낳은 엄마는 간신히 건져놓은 익사체처럼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다. 구석에 아무렇게나 뭉쳐놓은 더러운 커튼 같은 구름이 천천히 하늘 가득 펼쳐졌다. 줄거리도 없이 캄캄했던 공연의 막이 내려지자 나는 태어났다. 사람들은 혀를 차듯 웃었고, 양막을 뒤흔드는 최초의 박수갈채 그것은 우레와 폭우였다...
"결국 세상에는 사랑만이 가득한데, 또 어떤 사랑은 부름에도 답이 없다." 라는 문장이 이 노래와 함께 있는 것이 인상깊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는 것은 비단 사랑에만 적용되는 문장이 아닐 테지만 사랑에 적용할 때 가장 이해가 쉬운 것 같다.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언제나 어디서나 당신을 떠올리려면 가장 먼저 당신이 곁에 없어야 한다는 그런 모순. "이렇게 가여운 밤 나를 밝혀주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네 반짝이는 그대 횃불같은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