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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적 인간

이장욱, 뒤 본문

scrap

이장욱, 뒤

이제나 2019. 9. 21. 01:39

 

  너는 나에게 무슨 말을 했는데, 그게 무슨 뜻이지? 밤길을 걷다가 무슨 말을 들었는데, 그게 무슨 말이지? 캄캄해지다가,

  캄캄해지다가, 

  캄캄한 곳을 향해 돌아설 수도 없을 때,

  너는 괴물 같은 얼굴로, 십자가와 비슷한 자세로, 천둥 번개가 치는 밤하늘 아래,

  자꾸 거대해졌다.

 

  등뒤의 세계는 어디에나 있구나. 매일 잠에서 깨어나기를 반복했는데도 다시 밤. 흩날리는 빗방울들을 기준으로 나는 중얼거리네. 궁금한 목소리로.

  의심하는 목소리로.

  돌이 되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인가.

  모든 사람인가.

 

  뒤라는 곳은 무한해. 내내 타오르고 있구나. 나는 자꾸 무너지면서 또

  발생하는 세계를 바라보았다.

  빗줄기는 팔이 세 개였다가 다리가 열 개였다가 무수한 팔과 다리를 모아 못 박힌 채로

  무한이 되는 사람.

 

  너는 나에게 무슨 말을 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오래 살아온 도시가 재가 되어 있었다. 빗방울 하나하나가,

  처음 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장욱, 『생년월일』, 창비시선, 2011, p. 9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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