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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적 인간

이승희, 밑 본문

scrap

이승희, 밑

이제나 2018. 6. 26. 00:11


  이제 그만 혹은 이제 더는 이라고 말할 때 당신 가슴에도 눈이 내리고 비가 내리고 그랬을까. 수면처럼 흔들리던 날들이 가라앉지도 못하고 떠다닐 때 반쯤 죽은 몸으로 도시를 걸어보았을까. 다 거짓말 같은 세상의 골목들을 더는 사랑할 수 없었을 때 미안하다고 내리는 빗방울들을 보았을까. 내리는 모든 것들이 오직 한 방향이라서 식탁에 엎드려 울었던가. 빈자리들이 많아서 또 울었을까. 미안해서 혼자 밥을 먹고, 미안해서 공을 뻥뻥 차고, 미안해서 신발을 보며 잠들었을까. 이제 뭐를 더 내려놓으라는 거냐고 나처럼 욕을 했을까. 우리는 다시 떠오르지 않기 위해 서로를 축복해야 한다. 더는 늙지도 죽지도 않는 손들을 늦지 않았다고 물속에 넣어보는 것이다. 세상에 속하지 않은 별들로 반짝여보는 것이다.


이승희, 『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 문예중앙시선53, 2017, p.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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