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적 인간
유희경, 단어 본문
단어
빛이 떨어지고 빈 병이 있던 바닥에
거기 있다는 것을 본 것만 같은데
그저 그랬을 뿐 나는
흔적처럼 남아 있는 온기를 쓸어보았고
먼지처럼 작은 것들 묻어났다 알고 있었으니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잠에서 깨었을 때 사라진 당신은
당신 아닌 것들만 남아 당신이 되었고
나는 아주 작고 아득한 단어를 날리고
세어본 것이다 쓸 수도 발음할 수도 없는
단어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지만
그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지 그것은
날아가버렸고 도저히 돌아올 수 없으니
유희경,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문학과지성사, 2018, p. 54
오랜만에 페이지마다 발췌하고 싶은 것을 참은 시집.
하나만 발췌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시집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시인의 말도 남겨둔다.
시인의 말
나타나지도 않았고
사라지지도 않는
우리의 옛 마음에게
2018년 3월
유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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