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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괜찮아 본문

scrap

한강, 괜찮아

이제나 2020. 3. 26. 20:40

괜찮아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p. 75-77


한때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시집을 선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집게 되는 것이 어쩐지 한강의 이 시집이었다.

그 사람들이 이 시집을 모두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강의 시는 유독 따뜻하게 느껴진다. 쉽기도 쉬워서 누워 읽기에 좋다.

오랜만에 다시 펼쳐보았다. 이 시집을 내게서 선물 받아간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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