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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혼자를 누리는 일 본문

scrap

김소연, 혼자를 누리는 일

이제나 2019. 10. 21. 00:02

혼자를 누리는 일

 

  외로움으로부터 멀리 도망쳐나가는 바로 그 길 위에서 당신은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다. 놓친 그 고독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이 그러한 고독의 맛을 결코 음미해본 적이 없다면 그때 당신은 당신이 무엇을 박탈당했고 무엇을 놓쳤으며 무엇을 잃었는지조차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조은명·강지은 옮김, 동녘, 2012, p. 31.

 

  (……) 외롭다. 하지만 그게 좋다. 이 사실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 건, 외로운 상태는 좋지 않은 상태라고 흔히들 믿어온 탓이다. 그녀는 외롭지만 그게 참 좋다. 홀홀함이 좋고, 단촐함이 좋고, 홀홀함과 단촐함이 빚어내는 씩씩함이 좋고 표표함이 좋다. 그래서 그녀는 되도록 외로우려 한다. 그게 좋아서 그렇게 한다. 그녀에게 외롭지 않은 상태는 오히려 번잡하다. 약속으로 점철된 나날. 말을 뱉고 난 헛헛함을 감당해야 하는 나날. 조율하고 양보하고 희생도 감내하는 나날.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알람을 굳이 맞춰놓지 않고 실컷 자고 일어나는 아침, 좀더 이불 속에서 뭉그적대며 꿈을 우물우물 음미하는 아침, 서서히 잠에서 벗어나는 육체를 감지하며 느릿느릿 침대를 벗어나는 아침이다. 찬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사과 한 알을 깎아 아삭아삭 씹어 과즙을 입안 가득 머금고, 찻물을 데우고 커피콩을 갈아 까만 커피를 내려서 책상에 앉는 그런 아침이 좋다. 오늘은 무얼 할까. 영화를 보러 나갈까. 책을 읽다가 요리를 해볼까. 혼자서 자기 자신과 상의를 하는 일. 뭐가 보고 싶은지, 뭐가 먹고 싶은지를 궁금해하는 일. 그러면서, 그녀는 소소한 마음과 소소한 육체의 욕망을 독대하고 돌본다. 외롭다. 그러나 오랜 세월 매만진 돌멩이처럼, 그런 외로움은 윤기가 돈다. 롤랑 바르트는 이러한 시간을 "매끈한 시간: 해야 할 일을 그만두게 할지도 모를 약속도, '해야 할 일'도 없는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 변광배 옮김, 민음사, 2015, p.358.

 

  외로움이 윤기 나는 상태라는 실감은 그녀에게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었다. 외로울 때면 쉽게 손을 뻗어 아무에 가까운 사람과 애인이 되었던 시절도 있었고, 외롭다는 사실과 마주치는 것이 두려워 늘 누군가와 연결되어 아무 말이든 나누어야 잠이 들 수 있었던 시절도 있었고, 혼자서 식당에 찾아가 밥을 먹는 일이 도무지 어색해서 차라리 끼니를 굶던 시절도 있었다. 연락처 목록을 뒤져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야지만 겨우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은 나날도 있었고,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히는 게 두려워 누군가가 그녀를 생각하고 있다는 확인을 해야 안도가 되는 나날도 분명 있었다. 누군가와 연결이 되어야만 겨우 안심이 되던 그 시절들에 그녀는, 사람을 소비했고 사랑을 속였고 그녀를 마모시켰다. (……)

 

  (……) 오롯하게 혼자가 되어서, 깊은 외로움의 가장 텅 빈 상태에서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여야 할 차례다. 감정 없이 텅 빈, 대화 없이 텅 빈, 백지처럼 텅 빈, 악기처럼 텅 빈. 그래야 그녀는 좋은 그림이 배어나오는 종이처럼, 좋은 소리가 배어 나오는 악기처럼 될 수 있다.

 

  외롭다는 인식 뒤에 곧이어 외로움을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이 뒤따르는 일을 그녀는 경계한다. 잠깐의 어색함과 헛헛함을 통과한 이후에 찾아올 더없는 평화와 더없는 씩씩함을 만나볼 수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어쩐지 어딘가에서 감염된 각본 같아서다. 슬프다는 인식 뒤에 곧이어 슬픔을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이 뒤따르는 일 또한 그녀는 경계한다. 역시 어딘가에서 감염된 각본 같기만 하다. 외로움에 깃든 낮은 온도와 슬픔에 깃든 약간의 습기는 그저, 생물로서의 한 사람이 살아가는 최소 조건이라는 걸 그녀는 잊고 싶지 않다.

 

  (……) 그래서 매일매일 기다린다. 오롯이 외로워질 수 있는 시간을. 오롯이 외로워져서 감각들이 살아나고 눈앞의 것들이 선명하게 보이고 지나가는 바람의 좋은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그녀만의 시간을.

  외로워질 때에야 이웃집의 바이올린 연습 소리와 그 애를 꾸짖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모르는 사람들의 생활에 빙그레 웃을 수 있다. 외로워질 때에야 그녀가 누군가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어떤 연결은 불길하고 어떤 연결은 미더운지에 대해 신중해질 수 있다. 안 보이는 연결에서 든든함을 발견하고 어깨를 펴기 시작한다. 골목에 버려진 가구들, 골목을 횡단하는 길고양이들, 망가진 가로등, 물웅덩이에 비친 하늘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들에 담긴 알 듯 말 듯한 이야기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김소연, 「혼자를 누리는 일」,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문학과지성사, 2019, p. 116-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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