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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적 인간

송승언, 밝은 성 본문

scrap

송승언, 밝은 성

이제나 2020. 6. 23. 21:35

밝은 성

 

안개 짙은 날에는 걷기만 했지

죽는 날 듣게 될 음악을 생각하며

 

웃었어 친구들도 웃었지 맞닿은 어깨들이

빛나 보였어 먼 곳의 도시가 능히 그러듯이

 

피어오르는 빛을 따라서

안개는 몸을 지우며 길을 펼쳤다

 

친구들, 안개 속에서 크고 환하며

안개 걷히면 보이지 않는

 

친구가 없는 내 친구들

 

사과와 크레용, 장미나 의자 따위

저마다 대수롭지 않은 사물들을 손에 쥐고

그것을 신앙이라 밝히길 두려워 않았던

 

친구들이 울었어 어두운 도시로 걸었지

지울 몸이 없어 도시로 가는 길도 없는

흑암 속을 걷는 친구들

그곳이 도시인줄 모르던

 

친구들, 내가 죽은 뒤에도 내 친구들이었던 친구들

신실했고, 저마다 아껴 듣는 음악이 있었던

내 친구들

 

송승언, 『철과 오크』, 문학과지성사, 2015, p. 9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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