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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 이야기속으로

이제나 2018. 7. 19. 00:35


작년에 대학원엘 들어가서 운 좋게도 바로 학교 연극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세 가지의 옴니버스 이야기를 모아 올리는 극이었다. '거짓말'이라는 주제로 세 가지 이야기를 세 작가가 써낸 셈인데, 이 주제로 의견이 모아지고 나서 나는 꽤 빠르게 극을 구상했다. 거짓말, 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가식'이 떠올랐고 그러다 보니 엄마와 나의 관계를 연쇄적으로 떠올릴 수 있었다. 엄마와 딸. 처음에는 너무 사적인 얘기일까봐 고민했지만, 의외로 사적인 내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쓰면서, 그리고 쓰고 나서 깨닫게 되었다. 엄마와 딸의 관계란, -설사 아버지가 가족 내에 부재하고 있더라도- 필연적으로 가부장제의 폐단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었다. 희곡을 쓰기 위해 수많은 책들을 읽으면서 생각보다 '엄마와 딸'의 관계가 전형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관계 속에 교묘하게 숨어있는 폭력도 비로소 '폭력'이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내게 엄청난 위로가 되었다. 


나는 10대 때 가장 엄마를 미워했는데, 이제는 무뎌진 줄 알았던 그 미움들이 희곡을 쓰면서 불쑥 튀어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기도 하고, 또 내가 엄마를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너무나 사랑한다는 양가적 감정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즐겁다고 말할 수는 없는 작업이었지만 괴로운 만큼 내가 바뀌었다는 생각을 한다. 좋은 방향인지는 알 수 없다. 지금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나는 희곡 속 나와 비슷하기도 다르기도 한 '딸' 캐릭터에게 이 노래를 부르게 했다. 주제도 정해지지 않은 채 배우를 만났을 때 "노래만큼은 자신이 없다"고 했었는데 결국은 노래를 부르게 만들어서 아직 조금은 미안하다. 천사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 예쁜 내 배우들. 딸과 엄마를 너무나 잘 소화해주었다. 자전적인 희곡이다 보니 연습실에서 이야기도 참 많이 나누었다.


잘게 썰어져 있는 희곡의 구성 안에서, 딸은 엄마 없이 집에 혼자 있을 때만 큰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엄마가 딸을 괴롭히고, 원하는 대로 조종하려 들수록 노래는 사그라들지만 엄마는 끝내 딸의 노래에는 관심이 없다. 끝까지 이 노래를 완성해 부르지 못하는 딸에게 이입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공연 두 번째 날엔 어떤 분이 내내 우느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


이 노래를 선택한 것은 내가 이랑이라는 가수를 참 좋아하기 때문도 있지만 실제로도 내가 자주 흥얼거리는 노래이기도 한 데다 가사도 딸의 심정과 잘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나의 마음이 이 노래와 맞닿고 있었다는 반증일 테다. 연극은 작년 여름에 끝났지만 나는 아직도 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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