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적 인간
이성복, 빛에게 본문
빛에게
빛이 안 왔으면 좋았을 텐데
빛은 왔어
균열이 드러났고
균열 속에서 빛은 괴로워했어
저로 인해 드러난 상처가
싫었던 거지
빛은 썩고 농한 것들만
찾아 다녔어
아무도 빛을 묶어둘 수 없고
아무도 그 몸부림 잠재울 수 없었어
지쳐 허기진 빛은
울다 잠든 것들의 눈에 침을 박고,
고여 있던 눈물을 빨아 먹었어
누구라도 대신해
울고 싶었던 거지,
아무도 그 잠 깨워줄 수 없고
아무도 그 목숨
거두어줄 수 없었으니까
언젠가 그 눈물 마르면
빛은 돌아가겠지,
아무도 죽지 않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 곳,
그런 곳이 있기나 할까
다시는 죽지 않는 곳,
그런 곳에 빛이 있을까
이성복, 『래여래반다라』, 문학과지성사, 2013, p. 77-78
우연하게 다시 이 시집을 펼쳐볼 일이 있었는데 과거의 내가 마크를 해두었길래 여기에도 스크랩을 한다.
이 책은 2013년 7월 20일, 혜화에 있는 책방 이음에서 구입했다. 겉표지에 그렇게 써있었다.
멀지 않은 과거인데도 낯설구나.
'scrap'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현, 일인칭들 (0) | 2018.04.22 |
---|---|
김언, 지금 (0) | 2018.04.08 |
수나우라 타일러, 비건·괴짜들, 그리고 동물들 (0) | 2017.11.30 |
후안 마요르가, 천국으로 가는 길 (0) | 2017.09.19 |
홍지호, 토요일 (0) | 2017.09.16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