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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적 인간

홍지호, 로비 본문

scrap

홍지호, 로비

이제나 2021. 6. 19. 21:38

로비

 

  이곳은 로비다. 그들은 로비에 마주앉아 있다. 로비에는 약간의 음악이 흐르고, 그들은 약간의 음악이라는 표현이 완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완전히 틀리지도 않은. 로비는 분주하지만 고요하다. 음악은 그들이 평소에 좋아하던 아티스트의 리믹스 앨범 수록곡이고.

  나무가 흔들려서 슬픈 것 같다고 한 사람이 중얼거린다. 그는 우리가 같은 계절을 지나는 것이라면, 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생각했지만 로비에 흐르는 음악의 제목은 다른 것이다. 모든 음악은 리믹스지, 라고 누군가 생각하자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를 피해 많은 사람들이 로비로 들어왔고 비가 내리면 안과 밖의 경계가 선명해졌다.

  그들은 이제 창밖의 풍경을 함께 바라보고 있다. 마주앉은 사람도, 나무가 흔들려서 정말로 슬퍼 보이네, 중얼거렸고. 이제는 계절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도로에 심겨 있는 여러 그루의 나무 중 유독 한 그루의 나무만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로비는 오래 머물기 위한 곳이 아니지. 누군가 말했고 그들은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떠나고 로비에서 처음 들어보는 음악을 누군가 듣는다. 음악의 리듬은 로비의 고요와 더 어울리지만 창밖의 풍경과 음악의 개연성이 무시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로비는 잠깐 머무는 곳. 그러므로 로비는 완전하지 않고, 그러므로 누군가에게는 로비를 떠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비 내리는 창밖에 한 그루의 나무만이 흔들리고 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나무는 스스로 흔들지 못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홍지호, 『사람이 기도를 울게 하는 순서』, 문학동네, 2020, p. 40-41


홍지호 시인의 시집이 나온 걸 뒤늦게 알아서, 늦게나마 구입해서 읽었고

내가 쓴 이야기의 윤숙과 비슷한 모습이 언뜻 보이는 시를 발견해서 결이 더해지는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읽은 시집인데 좋은 시가 많아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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