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적 인간
이원, 검은 홍합 본문
검은 홍합
검은 냄비 속에 검은 홍합이 가득하다
켜켜로 쌓인 홍합은 입을 꼭 다물고 있다
홍합과 홍합의 틈바구니에
소리가 묻혔다
냄비에는 찬물이 들어 있고
홍합은 바다에서 왔다
한 번도 물에 들어간 적이 없어요
한 번도 물에 빠져본 적이 없어요
옷을 입고
가스 불에 올려졌다
불꽃은 새파랗고
추워
저절로 부딪히던 이를 넣고 입이 닫혔다
무서워
파도를 입고 입고 입고
단단해졌다
갇혔다
물이 들어오지 않게 붙지 않는 입을 꽉 다물고 있던 것
가라앉지 않기 위해 끝까지 주먹을 풀지 않았던 것
홍합이 덜그럭거리며 끓어올랐다
딱딱 이를 부딪치듯이
여기는 아직도 구겨진 벽
거품이 넘친다 냄비 뚜껑이 열린다
어린 손목이 알고 있는 시계는 어디에서 멈췄을까
홍합이 벌어지고 있다
선홍색 잇몸이 보인다
이원, 『사랑은 탄생하라』, 문학과지성사, 2017, p.103-104
전체적으로 선생님의 이번 시집은 2014년의 아픈 기억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읽기가 뻑뻑하다.
그 중에서도 <검은 홍합>은 상당히 노골적으로 세월호의 이야기를 건드리고 있어서 나에겐 무척이나,
어쩌면 불필요한 힘으로까지, 잔인하게 느껴진 시이다. 이후 한참 시집 읽기를 멈춰야만 했다.
오래 보고 생각하려고 스크랩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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