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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적 인간

장 미셸 몰푸아, 어떤 푸른 이야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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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미셸 몰푸아, 어떤 푸른 이야기

이제나 2017. 8. 24. 20:40

  때로 가로등 불빛 아래 그들이 보인다.


  그들은 알 수 없는 몽상에 잠겨, 푸른 물웅덩이 위를 떠다니며, 꼼짝도 않고, 조금 취한 듯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세상에 자신들뿐이라고 느끼며, 서로를 바라보지 않게 된다면 어디에 눈길을 두어야 할지 모르는 채, 서로 끌어안고 한참을 그렇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청록빛 어둠에 에워싸여 모든 것을 잊고 자신도 잊은 채, 사랑의 심연을 표류한다. 미지근하고 들척지근한 땀 송송 배어나는 심장을 셔츠 아래 감추고, 깍지 낀 손가락 사이로 터무니없이 작게 보이기도 하는 그 거대한 푸르름에 빠져.


  기차가 출발하려 할 때면, 그들은 부두에 남아 있는 이들을 향해 창 너머로 살며시 손 흔들어 보인다. 하고픈 말들로 한껏 부풀어오른 두 눈으로, 사랑 어린 눈길로 그들을 바라본다. 《다시 만날 것》을 속삭이면서.


  p.40




  영혼.


  어떻게 달리 말할 길이 없다.


  짧게 그렇게 한 마디만 할 것. 아주 재빨리 입을 열고 다시 다물어야 한다. 푸르름 한 자락을 허공에서 낚아채야 한다.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위하여. 그렇지 않으면 막연한 의문에 사로잡힐 테니. 끈질기게 뇌리를 맴도는 물음에. 이 침묵에도 침묵을 표현할 말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 기다림과 고뇌에도 말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에. 희망에 이름을 붙이기보다는 어렴풋이나마 울적한 마음의 윤곽을 그려보아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 언어에 구멍 하나 더 났을 뿐. 숨구멍이, 가냘픈 숨결 한 모금이, 우리의 생명을 지탱하는 숨결, 몇 마디 문장을 전해준 뒤 우리에게 거둬질 숨결이. 우리가 온갖 사랑의 말을 늘어놓은 뒤 우리에게서 거둬질 숨결이. 머지않아 그 말과 덩그러니 남게 될 것이다. 열에 들뜬 짤막한 말, 어디서나 외따로인 말. 통로처럼 거쳐가야만 할 영혼이라는 말. 사람들은 그 말을 아무에게도 속삭이지 않는다.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말은 대낮의 빛만큼 언어를 두려워한다. 그것에게는 눈꺼풀이 없다. 눈물은 흐르지 않지만, 그것의 고통은 뚜렷하다. 고통은 자리잡는다. 그리고 물음을 던지며 알고 싶어한다. 지쳐가는 고통의 흔적이 얼굴에 새겨진다. 눌러앉으려 한다. 


  p.64




  저기.


  손닿는 데 있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저기, 대강 그쯤일 거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마음도 머리도 텅 비어버린다. 푸르름을 곁에 두고 가슴 깊이 느껴보지만, 푸르름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무엇을 잡을 수도, 말할 수도 없다. 나날이 이 부재에 익숙해진다. 반짝이며 우리를 지켜보는 저 하얀 별들, 바로 저기에 모든 무한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의 안쪽에서 살기로 체념한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약속들은 오래 전부터 지켜지지 않았다. 하늘은 의미가 없고, 지평은 해독할 길이 없다. 어떻게 이 살덩어리를 지탱하고 서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대지는 까다롭지 않다. 우리의 뼈를 원할 따름이다. 그러나 푸른 하늘은 우리의 창백한 낯짝을, 치기 어린 장난을, 요란스레 튀는 행동을 경멸한다. 그 무엇도 행성들 사이에 밧줄을, 장식줄을, 금사슬을 팽팽히 당기게 하지 못한다. 우리의 늙은 육신은 돌로 가득 차, 이미 누워, 생기를 잃고, 점점 푸르러져, 우리 주변을 떠도는 더 창공, 우리 육신이 이르게 될 저 창공처럼 머지않아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p.66





  나는 언어 속에서 하늘의 푸르름을 관조한다.


  낱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향해 달려나가는 대신, 존재하는 것을 명명하거나 묘사하는 것에 그친다면 아무런 가치도 없으리라. 낱말의 맹목성이야말로 나 같은 구제불능의 몽상가에게 어울린다. 낱말은 무엇보다도 신비를 흩어버리면서 그 깊이를 더해주는 특유의 방식을, 우선 그 특징을 변형시켜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독특한 방식을 갖고 있다. 그 눈가림을 알고 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내가 명명하는 것을 내 것으로 만들 마음은 없다. 그것을 만지는 동작을 손으로 따라해보는 것만으로 족하다. 고통을 일깨우게 된다 해도, 불가능을 좇는 일은 언어의 몫으로 남기리라. 비극적으로 보이기 위해 가면을 쓰는 자에게 글쓰기에 스민 욕망과 기만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다. 자신의 허영심을 알고 있는 그는 체념하지 않고 그것을 독(毒)처럼 키운다. 그 순간부터, 그 이중성으로 인해 그는 자신이 인간이 되어가는 중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p.138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돛을 달고 배를 띄우는 일이다.

 

  역과 공항의 플랫폼, 수없이 꾸리고 푸는 여행가방, 차곡차곡 쌓아놓은 셔츠나 책, 푸르게 변색된 검은 잉크. 이 삶을 어깨에 걸머지고 또 다른 수많은 삶을 머릿속에 담고, 몸을 추슬러본다. 나의 수많은 얼굴은 내가 하는 말과 같아, 나는 좀처럼 그곳에 안주할 수 없다. 통로라고 해야 더 어울릴 그것들은 침실을 향해 나있다. 나는 방문에 부딪힌다. 그러면 잠시 패배감에 젖지만 이내 체념하기에 이른다. 나의 환(幻)들이 어른거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p.140






  늦가을, 잔잔히 비 내릴 때, 하늘의 흐느낌을 듣고 있다고 상상해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럴 때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착잡한 눈물을 슬레이트 지붕과 아연 홈통을 두드리는 맑디맑은 빗물에 보태는 일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부드러운, 거의 평온해진 동작이다. 이 시각, 이 계절에, 우리는 언어를 뒤흔들지 않고, 거기에 우리 자신을 내맡긴다. 이번만큼은 그 적절함이 빗줄기의 속삭임과 유리창의 어둠에 정말 잘 어울린다고 확신하며. 그 순간, 뜻이 확실치 않아 오래 전부터 밀쳐두었던 책 몇 장을 다시 읽어보고 싶으리라. 이번에는 그 감동을 되찾고 그 의미를 이해할 거라고 확신하며. 그래서 만일 펜을 들게 된다면, 무엇을 발견하기보다는 기억해내기 위해서이리라. 자신의 얼굴이 비친 수면 위로 마침내 몸을 숙이듯.


  장 미셸 몰푸아, 『어떤 푸른 이야기』, 정선아 옮김, 글빛 출판사, 2005,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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