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적 인간
홍지호, 토요일 본문
토요일
친구야 너는 육손이었지
친구들에게
여섯 번째 손가락이 있던 자리를 보여줄 때
나는 너의 흉터가 부러웠어 친구들의 눈동자와
여섯 번째 상상력과
기차를 타면 자꾸만 풍경이 지나간다
풍경은 한 번도 지나간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귀밑에서 손가락이 만져졌지
친구야 너는 토요일에 죽었지
다른 친구들의 눈동자가
너의 사인을 자살이라고 적을 때
나는 추락사라고 쓰고 있다
어떤 책에는 신이 인간을
여섯 번째 날에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여섯 번째 날에 태어난 사람들이 자꾸 돌아다닌다
지나가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신의 손가락 개수가 궁금했었어
그건 쓰여있지 않아서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가 육손이였으면 좋겠다
여섯 번째 날에 세어볼 수 있게
너처럼 잘라버렸다면
상상으로라도 아플 수 있게
네가 잘라버린 손가락을 무의미라고 부를 때
나는 말해주지 못했다
무의미는
무의미한가
친구야 오늘은 토요일이야
너는 토요일을 셀 수 있었지
내일은 무의미한 예배를 드리자
귀밑에서 자꾸 의심이 자란다
홍지호, 『문학동네 84호』, 문학동네, 2015 (2015 문학동네 신인상 시부문 당선작)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꽤 오래 좋아하고 있는 시이다.
나의 어떤 기억을 건드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 블로그에 있던 것을 여기에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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