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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적 인간

이장욱, 마네킹 본문

scrap

이장욱, 마네킹

이제나 2018. 8. 27. 02:02

마네킹


바람이 바람을 넘쳐 플래카드를 흔들고

잎 넓은 나무가 잎 넓은 나무를 넘쳐 푸르른 날


나는 경건하였다.

나는 불순한 상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완벽하게 나를 조절하였다.

그러므로 당신은 나의 표정을 읽지 못한다.

당신이 바라볼 때마다

나의 침묵은 부활한다.

나의 시선은 이미

완성되어 있다.


격렬한 밤이 당신을 지나갈 때도

나는 기하학적인 자세를 유지한다.

내 시선 끝에 서 있는 대우아파트

나는 그의 정지 자세를 이해한다.

피고 지는 것들은 지겨워.

나는 서서히 낡아갈 것이며

나의 최후는 단호하다.


플래카드 아래로 당신이 당신을 넘치며 걸어온다.

당신이 당신에게서 흘러나와 긴 그림자를 이룰 때

잠시 공중에 머물렀던 낙엽이

당신의 배후를 횡단한다.

당신은 혼자 고개를 흔든다.

나는 당신이 지겹다.


이장욱, 『정오의 희망곡』, 문학과지성사, 2006, p. 6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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