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적 인간
허수경, 목련 본문
목련
뭐 해요?
없는 길 보고 있어요
그럼 눈이 많이 시리겠어요
예, 눈이 시려설랑 없는 세계가 보일 지경이에요
없는 세계는 없고 그 뒤안에는
나비들이 장만한 한 보따리 날개의 안개만 남았네요
예, 여적 그러고 있어요
길도 나비 날개의 안개 속으로 그 보따리 속으로 사라져버렸네요
한데
낮달의 말은 마음에 걸려 있어요
흰 손 위로 고여든 분홍의 고요 같아요
하냥
당신이 지면서 보낸 편지를 읽고 있어요
짧네요 편지, 그래서 섭섭하네요
예, 하지만 아직 본 적 없는 눈동자 같아서
이 절정의 오후는 떨리면서 칼이 되어가네요
뭐 해요?
예, 여적 그러고 있어요
목련, 가네요
허수경,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문학과지성사, 2016, p. 50-51
"짧네요 편지, 그래서 섭섭하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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