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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육각(六角)의 방

이제나 2018. 9. 3. 00:50

육각(六角)의 방


이 방 속에

나는 덜 익은 꿀처럼 담겨 있다

문이 열리면 후루룩 흘러내릴 것처럼


이 방 옆에

또다른 방들이 붙어 있다는 게 마음 놓인다

켜켜이 쌓인 六角의 방들을

고통이 들락거리며 매만지고 간다


이 방은

군집할 수 있는 최적의 각도와

고립할 수 있는 최적의 넓이를 지녔다


내 어깨를 쏘았던 말벌은

침을 잃었고 나는

침을 삼키고 오래 앉아 있다


땅 위에 으깨진 말벌집,

검은 물결무늬를 지닌 한 세계가 출렁거리고

六角의 방에서

애벌레들이 기어나오기 시작한다


꿀은 아직 익지 않았다


나희덕, 『야생사과』, 창비시선, 2009, p. 40-41